성미산 개발은 공동체정신을 짓밟는 몰인식

사람들에게 묻는다.

“안전하고 깨끗한 수돗물을 마시기 위해 산을 헐어내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동네어귀에 작은 산이 그대로 있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때 많은 사람들은 질 좋은 수돗물을 먹기 위해 산을 없애고 배수지를 건설하려는 서울시 정책에 맞섰다. 수천명의 시민들이 모여 숲의 소중함을 함께 느끼며 숲속 음악회를 열었고, 동네의 크고 작은 동아리에서는 마을 숲을 오롯이 지키기 위해 서명운동과 축제를 벌였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어느 날 새벽, 난데없이 기계톱으로 아름드리 나무들을 순식간에 베어낼 땐 온몸으로 저항했다.

세상천지를 찾아봐도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공청회가 아니라, 이해당사자와 행정당국, 그리고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는 진정한 참여민주주의 공간으로서의 공청회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동네 고등학교 대강당에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운집한 사람들이 긴 시간동안을 경청하고, 토론하고, 공감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런 의미있는 실천에도 불구하고, 옳은 것을 옳게 보지 못하고, 주민들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서울시를 보면서 주민들은 거대한 벽을 맞대고 있는 느낌이었을 터. 그러나 주민들은 달랐다. 어느 날 아침, 서울시장이 민생을 살피기 위해 지하철로 출근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하철 번개면담을 성공시킨 그들. 얼마나 기발한가. 절망과 한계를 넘어 솜털 같은 가벼움과 해학스러움으로 상황을 바꿔놓았다.

그토록 많은 열정과 노력, 그리고 한 차원 높은 실험정신이 스며든 그 마을운동이 ‘성미산 살리기‘였다. 한마디로 마을 숲이 가진 가치의 재발견이었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성미산을 살려낸 지 채 5년이 넘지도 않았는데, 또 다시 개발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이 던져져 있다.

“사립학교를 짓기 위해 작은 산과 마을 숲을 없애도 좋습니까, 아니면 우리 동네에 작은 산이 스스로 서있기를 원하십니까?”

홍익재단이 홍익대학교 안에 있는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디자인센터 등을 성미산 자락을 잘라내고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벌써 마포구청에서는 서울시로 허가신청을 해놓은 상황이다.

안 될 일이다. 실천으로 터득한 가치인식은 오래 가듯, 5년 전 성미산의 가치를 너무나 생생하게 느낀 주민들은 또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각박할 대로 각박해진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그나마 동네 사람들끼리 풋풋한 정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계기와 상징이 된 성미산은 이미 작은 산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공동체의 뿌리가 되었다. 해서 성미산의 훼손은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공동체 정신을 짓밟는 몰인식이다.

부자동네 강남에는 많은 돈을 들여 공원녹지라는 환경공간을 창출한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소득의 격차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공원녹지의 질과 양이 다르다고 한다. 강북의 작은 마을 사람들이 강남처럼 비싼 돈을 들여 공원녹지를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소중하게 지켜낸 우리산, ‘성미산’을 좀 그래도 놔 달라는 것인데도 이것마저 거스른다면 행정의 존재감은 없다. 곧 서울시는 비답을 내려야 한다. 이미 민심과 미래는 그 답을 알고 있으니 한결 가볍지 않으리.

by 오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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