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정비사업을 운하사업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이유

마침내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과 지역경제발전, 홍수와 가뭄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다시금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지난 12월 15일 『지역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그 일환으로 4대강 정비사업을 들고 나왔다. 지난 10월 30일 ‘국토이용효율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수도권 규제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비수도권 지역의 지자체와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정부는 한반도대운하사업을 비수도권 지자체와 지역주민 달래기 사업의 한 목록으로 꺼내들었다. 경인운하사업은 공공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고, 4대강 정비사업을 이번에 발표함에 따라 마침내 한반도대운하 사업은 실질적인 추진이 공표된 셈이 되었다.

정부가 발표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는 내년부터 2012년까지 4년 동안 14조원이 투자되는 사업이다. 정부는 ‘그동안 지자체로부터 적극적인 추진 건의가 있었고’, ‘홍수 및 가뭄 피해가 빈발함에 따라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지역경제 활성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이 사업을 추진할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또한 하천정비사업은 운하사업과는 분명히 다른 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교수모임(이하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은 지난 5월부터 이러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4대강 하천정비사업은 형식을 빌린 지역별 운하건설사업이며, 궁극적으로는 한반도대운하사업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러한 음모를 즉각 중지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해 왔던 것이다(5.22. “하천정비사업으로 위장한 한반도대운하사업을 백지화하라!” 성명서 참조).

그러나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한반도대운하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관련 TF를 해체하고 연구를 중단시키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음에도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준비해왔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지난 6월 촛불 민심으로 놀란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나, 지난 10월 이명박 정부의 ‘100대 과제’ 사업에서도 한반도대운하사업을 제외한 것은 국민을 기만하기 위한 전략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리가 하천정비사업을 운하사업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정부는 지난 11월 3일 발표한 ‘경제위기 극복 종합대책’에서 ‘하천정비사업에 7,8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이번에 4대강 정비사업ㆍ물길 잇기 사업으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14조 1천 418억원의 예산을 투여하기로 수정하였다. 총사업비의 규모가 정부가 당초 한반도대운하사업비로 밝힌 16조원과 유사하다는 점, 사업기간이 2009년부터 2012년까지로 임기 내 완공하겠다던 한반도대운하사업과 일치하는 점, 한반도대운하사업의 핵심 구간인 낙동강 정비사업에만 6조 1,802억원을 투입하는 점 등은 하천정비사업이 운하사업의 일환일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둘째, 현재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국토해양부로부터 25억원의 용역비를 받아 하천정비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건설기술연구원은 지난 봄 밀실운하연구를 수행했던 기관이었고, 그 당시 운하연구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이 대부분 이번에는 하천정비라는 이름의 용역에 다시 참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국토해양부가 또다시 하천정비라는 이름으로 운하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하천정비사업은 운하건설을 위한 기초공사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셋째, 한반도대운하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는 의지는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각부처 장관, 여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관변시민단체 등의 발언과 활동을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1월 28일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4대 강 정비사업이면 어떻고, 운하면 어떠냐”고 주장하여 한반대운하사업의 가능성을 언급하였고, 뒤를 이어 이명박 캠프에서 대운하 공약을 담당하였던 한나라당 박승환 전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발언하였다. 지난 12월 3일에는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이 “4대강 수질 개선사업을 다 해놓고 대다수 사람들이 (운하를) 연결하자고 하면 하지 말자고 할 수는 없다”고 언급하고, 이만의 환경부 장관도 다음날 “탄소로만 따진다면 운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미 친이명박계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안국포럼에서는 지난 달 지역균형발전 대책으로 한반도대운하사업의 재추진 가능성을 제기하였고, 영호남 단체장들도 4대강 정비사업의 추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경제위기라는 것이 모든 개발사업이나 규제완화 대책을 정당화시켜 줄 수는 없다. 당장의 경제위기 극복도 중요하지만, 경제위기 극복 후 우리 국토가 어떻게 재편될 것이며, 우리 국가의 경쟁력이 얼마나 회복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우리나라 4대강의 국가하천정비 개수율(開水率)이 97%를 넘은 상태에서 14조원이 넘은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는 것이 경제위기 극복에 무슨 보탬이 될 것인지 의심스럽다. 홍수를 예방하고자 한다면 정작 최근 홍수가 가장 빈번하였던 강원도 지역이나 지천과 소하천을 중심으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기존의 운하예정지인 4대강의 본류를 하천정비사업의 대상지역으로 설정한 근거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하천정비사업이 경제위기 해소나 지역경제발전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가 없다.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여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서민 경제와 일자리 창출, 경기 부양에 가장 효과적인 사업에 우선 투자할 필요가 있다. 같은 SOC 사업이라고 해도 경제적 타당성 조사를 마친 검증된 사업에 투자의 우선 순위가 있음은 물론이다. 벼랑으로 내몰린 중소기업들과 교육, 복지를 포함한 서비스 부문 등 정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시급한 분야가 너무도 많다. 현재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급조된 하천정비사업은 이 어떤 기준에도 부합하지 못한다고 본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처럼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인다고 쉽게 해결될 수 없다. 당장은 단순직 일자리가 창출될 수도 있겠지만, 배가 다니지 않는 운하와 사업의 타당성이 부족한 하천정비사업이 과연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제고할 수 있을까? 보다 긴 안목으로 지역균형발전을 이루면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전략산업을 육성하는 데 재원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통합과 국민의 정부에 대한 강한 신뢰이다. 이번에 또다시 정부가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추진하려 한다면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할 이 시점에 국론 분열을 야기하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정부는 국민을 현혹시키고 국민 통합을 해치는 한반도대운하사업이나 유사 관련 사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경제적 효과도 없고 국민적 신뢰도 상실한 대운하사업에 투자될 재원은 경제위기에서 가장 고통을 받게 될 사회취약 계층의 주거, 복지, 교육을 위한 예산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2008. 12. 17.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교수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