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와 운하 판독법

택시를 탔다. 먼저 말은 건네는 기사님. “아니, 대통령과 여당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하천정비사업한답시고 전국을 공사판 소리로 뒤덮을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는데 그 사람들이 제정신인가요?”, “또 다시 국가부도위기까지 갈수도 있다는데 공사판에 세금을 쏟아 부을 생각을 하다니 한심합니다.”

지난 15일 정부가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 마뜩잖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14조라는 어마어마한 재정을 투입해서 4대강 본류를 정비하겠다는 것인데, 실은 운하건설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왜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운하건설사업인지에 대해 먼저 따져보자.

4대강 살리기, 한번 따져볼까?

첫째, 하천정비사업은 수계치수사업, 국가하천정비사업, 하천재해예방사업으로 구분되고, 대부분이 제방을 축조하거나 취약한 제방을 보강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하천정비사업을 해야 하는 이유가 “죽은 하천을 살린다”고 말하고 있는데, 죽은 하천을 살리는 사업이라면 하천수질개선, 하천생태계 복원 사업이어야 한다. 하천에 오염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자연형 하천복원을 통해 하천생태계를 살리고, 나아가 하천주변의 유역 전체를 친환경적으로 잘 관리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정부가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강바닥을 굴착하고, 제방을 높이고, 댐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그러니 하천을 죽이는 사업, 그것도 운하건설을 염두에 두고 미리 강바닥을 파내는 사업을 편법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둘째, 국토해양부 홈페이지를 보면 하천정비 진행정도(하천개수율)이 나와 있는데, 2006년 현재 전국하천 개수율은 82%에 달하고, 한반도대운하 예정구간이 포함된 국가하천 개수율은 97.3%가 완료됐다. 그 동안 쏟아 부은 국고가 9조원이 넘는다. 다른 말로 하면 운하예정구간인 4대강 하천정비사업은 이미 완료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곳에 또 하천정비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기존의 하천정비사업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다는 얘기이고, 그것이 바로 운하건설이라는 것이다.

셋째, 강바닥을 파고, 콘크리트 호안블록을 쌓는 하천정비사업이 아니라 새로운 ‘필요’로 인해 추진하는 사업이면 차원이 달라야 한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국토해양부는 하천(하도)중심의 홍수방재는 한계가 있으니 유역전체를 놓고 홍수를 방어하는 방향으로 혁신적인 전환을 했다. 하천주변에 원래 낮은 저습지였던 곳을 복원해서 홍수터와 천변저류지를 만들어서 태풍 카트리나로 인해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던 뉴올리언즈와 같은 상황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그런 새로운 전환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토목사업이고, 운하건설 사업이다.

넷째, 지난 2년 동안 한반도대운하 관련 논란의 핵심은 경제성이 없다는 문제였다. 그런데 사실상 운하사업임에도 국고를 들여 하천바닥 굴착을 해놓으면 막상 운하사업을 추진할 때는 그 비용을 들여 이미 공사를 다 해놓았기 때문에 비용항목에서 빠지게 된다. 따라서 사실상의 운하사업을 하천정비사업이라는 명목으로 국고를 들여 공사를 해놓고 나서 경제성 평가를 해보면 비용이 상당히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성은 높아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대운하사업은 경제성이 있는 사업이 되고 큰 논란을 피해갈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술수가 숨어 있다.

기어코 밀어붙이겠다는 오만함

다섯째, 4대강은 살아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와 지역개발을 부추기는 세력들은 자의적으로 사망선고를 내렸다. 20여년 동안 강과 더불어 살아온 김상화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올해 갈수기 때 낙동강 수질이 1.2ppm으로 거의 1급수 상태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생명의 강은 인간들의 온갖 개발행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건강하게 지켜오고 있는데 기어코 운하건설을 밀어붙일 오만함은 생명의 젖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사실상의 운하건설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댐건설도 하겠단다. 정부가 제시한 댐들은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운하용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할 곳들이다. 게다가 영월댐이나 지리산댐 등은 오랜 기간의 사회갈등과정을 거치면서 정부가 어렵사리 백지화 선언을 했던 곳들이다. 이런 사회적 합의를 너무나 손쉽게 뒤집어 버리는 그 무모한 과단성에 무덤에 있던 박정희가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바야흐로 개발독재의 재림이다.

오성규 환경정의 사무처장

[2008년 12월 22일자 시민사회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