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환경호르몬이란?

‘환경 호르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컵 라면 용기’  ‘다이옥신’ ‘남성의 생식 장애’… 지난 2, 3년 사이에 보건복지부와 환경부가 각각 환경 호르몬에 대한 연구를 하고 발표를 했는데, 아마 전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뭔가 특별하고 재미있는 포인트를 선호하는 매스컴 탓에 그리 됐는지,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환경 호르몬이 뭔가 특수한 물질이어서 특정한 곳에 들어 있으며 특별한 증상을 일으키는 것처럼 전달된 감이 있다.

그러나 환경 호르몬의 위협은 그보다 훨씬 포괄적이며 광범위하다. 얼마 전에 다지모가 우리 생활 주변의 환경 호르몬에 대한 조감도를 만든 적도 있지만, 우리를 둘러싼 생활환경 속에는 그야말로 환경 호르몬이 없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도대체 환경 호르몬은 무엇이며 왜 문제가 될까?

환경 호르몬이라는 말은 일본과 우리 나라의 매스컴에서만 쓰이는 말이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말은 ‘내분비 교란 물질(endocrine disrupters, ED)’ 라고 한다. 내분비 물질이란 호르몬을 비롯해서 효소, 신경전달물질 등 우리 몸에서, 우리 생명에 필요한 작용을 하기 위해 분비하는 모든 물질을 가리킨다. 이 내분비 물질, 혹은 내분비 작용을 교란시키는 물질들은 몸의 외부에서 들어온다. 그러니까 우리 몸에서 만들어내는 호르몬이 아니라 주변 환경 속에서 우리 몸에 들어와서 호르몬처럼 행세를 하며 실제로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 즉 환경에서 들어오는 가짜 호르몬을 환경 호르몬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면, 우리 몸에서 만들어내는 호르몬 중에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라는 것이 있다. 이 호르몬은 난소, 부신피질, 그밖에도 체내 이곳저곳에서 아주 조금씩 만들어지는데, 일단 만들어지면 이 호르몬을 필요로 하는 세포에 보내진다. 유방, 자궁 등 성징과 직접 관련된 세포 이외에도 피부, 피하지방, 머리카락, 성대 등 여성다움이 드러나는 모든 기관이나 조직의 세포에 보내진다. 에스트로겐을 필요로 하는 세포에는 호르몬 수용체라는 것이 있어 에스트로겐이 들어오면 그 호르몬과 호르몬 수용체의 요철(凹凸)이 맞아 떨어져 확실히 결합하게 된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 새로 개발되어 쓰이는 물질 중에는 이 에스트로겐과 분자 구조가 꼭 닮아 있는 것들이 많아 이런 것들을 우리는 가짜 에스트로겐이라는 뜻으로 제노 에스트로겐(xeno-estrogen)이라고 한다. 제노 에스트로겐은 자동차의 배기 가스나 아스피린 같은 합성 의약품에도 들어있으며, PVC 합성수지, 통조림이나 우유팩 안쪽에 코팅된 플라스틱 등 연하고 불에 녹기 쉬운 플라스틱 종류나 합성 섬유에서도 많이 나오는데, 이런 물질들이 입, 코, 피부를 통해서 우리 몸에 들어오면, 에스트로겐을 필요로 하는 세포 속의 수용체에 딱 들어붙게 된다.

우리 몸은 참으로 정교한 조직체여서 아주 미량의 내분비 물질로 그 복잡한 생명현상들이 다 이어져 가는데, 아무리 미량이라도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만들며, 일단 필요량을 만들어 내면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에스트로겐을 받아야 하는 세포의 수용체가 가짜 에스트로겐으로 꽉 차게 되면 더 이상 몸은 에스트로겐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가짜 에스트로겐은 모양만 에스트로겐이지, 실제로 여성 호르몬이 여성의 몸 안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 매달 난자를 만들었다가 수정이 안되면 폐기하는 생리 작용을 꾸준히 해 나가야 하며, 마음에 맞는 남성에게 이끌리거나, 혹은 자기가 낳은 아기에게 모성애를 느끼는 등 심리작용도 일으켜야 하고, 아기를 낳고 나면 호르몬 균형을 회복하여 자궁을 아물게 하고 젖을 내보내야 하는 등 여성 호르몬이 할 일이 정말 많은데도 이런 일들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월경불순이 되거나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이 되거나 동성애 경향이 생기거나 젖이 잘 나오지 않는 등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다가 급기야는 유방암, 자궁암 같은 큰 병도 일으킨다.

제노 에스트로겐은 남자의 몸에서도 이상을 일으킨다. 남성의 몸에도 여성 호르몬이 아주 조금은 들어 있고, 특히 난자가 수정된 직후인 임신 초기에는 남성과 여성 호르몬의 균형이 아주 불안정하다. 이런 상태에서 여성 호르몬과 꼭 같이 생긴 것이 외부로부터 많이 들어오게 되면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혹은 여성화된 남성으로 태어나게 되며, 성장하면서 제노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 정자의 운동성이 느려진다든지 하는 생식능력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에스트로겐의 경우 한가지만 보아도 이 내분비 교란물질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생활 속에서 이미 실용화되어 있는 물질 가운데 이렇게 내분비 교란성이 있는 물질로서 학계가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것만 67종이며, 아직 채 밝혀지지 않아서 그렇지 인간의 손으로 합성된 물질에는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져 가고 있다.

우리가 편리하다고 함부로 만들어내어 함부로 사용하는 ‘인공 합성물질’, 지난 세기 동안 이 물질들은 실제로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면서 생활 공간을 가득 채워왔고 점점 더 그 사용의 양과 종류가 늘어가고 있다. 환경론자들은 이런 물질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해왔다.

그러나 지난 세기 동안 의학의 발달로 내분비 물질, 유전자, 뇌신경계통, 면역체계 등에 대한 지식이 자꾸 축적되면서, 이런 물질들이 동시에 우리 생명을 파괴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가고 있다. 환경오염물질들은 환경을 오염시키기 이전에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파괴해 온 것이다.

* 환경저술가 이진아 님의 시공사 ‘무공해 엄마에게 물어보세요'(http://sigongsa.com) 코너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