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약자를 수탈하는가?

 미국의 저소득층 흑인들은 열악한 지역에 살면서 환경질환의 높은 유병률을 보이고 있다. 중산층 백인들과 견줄 때 이들이 겪는 환경적 차별과 불이익은 분명해 보인다. 이 현상을 ‘환경 불평등’ 혹은 ‘환경 부정의(environmental injustice)’라 부른다. 클린턴 정부는 환경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환경정책의 명운을 걸었다.

 ‘ 저소득층 흑인’은 사회집단이란 측면에서 사회적 약자이고, 인종집단이란 측면에서 생물적 약자다. 중산층 백인이 미국사회의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소득층 흑인은 적절한 삶을 살 수 있는 권리의 박탈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이 박탈이 사회적 삶의 차원을 넘어 환경적 삶의 차원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데 새로움이 있다. 불평등을 야기하는 권력의 촉수가 사회의 영역만 아니라 환경의 영역에까지 뻗어 약자들의 삶을 억압하고 수탈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도 근자에 들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인종 차별이 없고 산업화가 아직 진행 중이란 점이 그러하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경제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사회집단이 분화하면서 갈등하고 있는 사회다. 때문에 권력은 부를 생산하고 독점하는 집단으로 집중되고, 그렇지 않는 집단은 이로부터 배제와 박탈을 겪는다. 이러한 권력적 작용은 ‘개발’이란 사회적 과정을 통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말하자면 개발과정을 둘러싸고 개발강자와 개발약자 간 권력 불평등이 이루어지고, 개발강자에 의한 개발약자의 억압·배제·수탈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곧 한국적 환경 불평등 혹은 환경 부정의에 해당하는 현상이다.

 개발은 경제적 가치 창출을 위해 국토환경을 개조하고 이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기업영역이나 시장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국토환경의 영역으로까지 파고들어 자연을 돈이 되는 것으로 바꾸는 행위가 개발이란 뜻이다. 개발이 부를 창출하고 권력을 만들어 내다보니 우리 사회 갈등의 축은 개발주의 세력과 반개발주의 세력 사이에 구축되고 있다. 이는 그야말로 한국적 특수성이다. 오늘날 개발주의는 시장만능주의 이념인 신자유주의와 결부되어 신개발주의로 거듭나면서 국가권력마저 오염시키고 있다. 이명박 정부를 토건국가로 하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국토환경을 돈이 되는 것으로 바꾸는 개발은 대개 국가행정과 정책을 매개로 한다. 때문에 개발주의 세력은 국가권력을 등에 업고, 또한 국가권력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회적으로 만연한 개발 과정을 통해 개발약자를 수탈한다. 개발주의 세력이 집권세력이 된 토건국가 상황이 되면서 개발권력의 발호는 더욱 드세어지고 있다. 이와 비례하여 개발약자들의 삶의 권리와 기회가 박탈되는 현상도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도시공간을 돈이 되는 것으로 바꾸는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국가권력은 사회적 약자이자 개발약자인 세입자들을 개발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생존권과 생명권마저 빼앗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한다는 구실로 추진되는 대운하 건설과 같은 대규모 토건사업은 지역의 사회적 약자이자 개발약자들의 일상 삶터 해체를 넘어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생명적 삶의 기반마저 박탈하고 있다. 토건적 개발은 이젠 녹색성장이란 이름으로 분칠한 채 자연의 세계를 본격 공략하면서 지구 생태계의 생물약자 마저 수탈하고 있다. 개발권력에 의한 약자의 수탈이 인간계를 넘어 자연계까지 뻗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와 생물 약자를 수탈하는 세력은 퇴행적인 개발권력이다. 개발권력이 사회전반에 발호하고 있는 것은 토건국가란 상황 속에서 국가권력과 일체화하고, 또한 국가권력에 의해 비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의 생산과 독점을 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개발권력은 한국자본주의를 지배하는 권력, 즉 자본권력이다. 이를테면, 대형 토건사업이 국가정책에 의해 지지되는 듯하지만, 실은 투자와 생산을 담당하는 토건적 재벌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또한 그들의 진두지휘 하에서 추진된다. 개발약자의 수탈은 결국 국토환경을 돈이 되는 것으로 바꾸어내는 자본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다. <끝>    

조명래(단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