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는 어떻게 환경을 파괴하는가?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자원을 채취해 먹고살아 간다. 먹고 살아가는 것과 자연의 관계는 곧 경제와 환경의 관계를 말한다. 인류역사는 먹고 살아가는 방식, 즉 경제의 진화로 집약된다. 이는 환경에 대한 지배와 착취의 진화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경제는 전에 없이 고도화되어 선진국의 물질적 풍요는 차고 넘친다. 그에 비례하여 환경도 전에 없는 고도의 착취 대상이 되어 더 이상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21세기인 지금,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꾸려지는 경제하는 방식을 흔히 ‘신자유주의’라 부른다. 지구 온난화 등으로 나타나는 지구적 환경위기는 이 신자유주의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되살아난 시장자유주의를 말한다. 자본주의 초기의 방임적 자유주의가 1970년대 하이에크를 추종하는 자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다가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영국의 대처정부 정책으로 되살아났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때 인간은 자유의지와 이성적 능력을 발휘해 경제적 가치를 최대한 실현한다는 믿음 그 자체다. 그래서 국가 대신 개인 간의 거래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시장에 대한 강한 신뢰를 표방한다.

 신자유주의는 국가가 나서서 경제를 포함한 사회전반을 간섭하고 규율하는 각종 제도의 철폐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탈규제, 민영화, 자율화 등은 바로 신자유주의의 화신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은 국가가 지켜 온 공동체의 복지영역에 대한 빗장을 풀고 그 구성원의 생존을 시장경쟁에 맡기는 데 있다. 여기엔 온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터전으로 환경도 포함된다.

 통상적인 환경정책은 보전을 위한 규제를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도래로 환경기준, 환경평가절차, 환경세제,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 등의 규제가 전반적으로 완화되는 추세다. 규제완화는 직접적이라기보다 투자나 생산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에 포함된 유인책이나 예외규정 등을 통해 주로  이루어진다. 또한 많은 경우, 시장원리에 따라 오염자나 수혜자에게 비용과 부담을 부과하는 세제(예, 탄소세)의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경제를 위해 환경이용이 극대화되어야 하지만 훼손이 불가피할 경우 시장원리에 따라 비용만 부담하면 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식 환경규제의 논리다.

 신자유주의식 환경규제 완화의 구실은 이렇듯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돕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는 환경의 외양을 바꾸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속살마저 신자유주의에 물들도록 바꾼다. 신자유주의는 가격으로 환산해 시장에서 거래하게 함으로써 환경을 돈과 상품의 거래영역으로 끌어드린다. 규제완화에 의해 빗장이 풀린 환경 속으로 침투한 돈과 상품의 촉수가 곧 신자유주의 하에서 환경이 전면적으로 파괴되는 단초가 된다. 상품화되고 자본화된 환경은 가치생산의 극대화를 위해 지속적이면서 파괴적인 개발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환경으로 상품 및 시장논리의 침투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고삐 풀린 기업 활동의 초국경적인 팽창과 함께 지구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오늘날 환경문제가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뒤엔 바로 ‘신자유주의식 세계화’란 거대한 힘의 작용이 있다. 신자유주의식 세계화를 이끄는 것은 일단의 초국적 기업들이다. 세계 전역으로 뻗어있는 생산 및 유통 네트워크를 통해 이들은 오늘날 지구촌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는 자원과 에너지를 채취하고 이를 이용한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해 유통∙소비시키는 순환망을 말한다.

이 순환망은 지구의 모든 후미진 곳까지 파고들어 있다. 이 순환망을 통해 그곳의 환경은 돈이 되는 상품으로 바뀌고, 그러는 동안 지역 생태계는 광범위한 파괴와 교란을 겪는다. 가령, 순환망을 통해 자원생산을 늘리도록 강제 받는 개도국은 환경이 외연적으로 광범위하게 파괴되는 것을 경험한다. 반면 대량 생산과 소비를 이끄는 선진국은 환경의 내부가 심대하게 교란되는 것을 겪는다. 환경문제의 지구적 확산 속에서도 환경협정 등을 통해 환경의 편익은 선진국으로 집중하고 있지만, 그 비용(오염 및 그 피해)은 힘없는 개도국으로 전가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지구적 환경 불평등은 환경 자원의 불공평한 배분과 활용을 촉진해 환경문제를 범지구적으로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 환경을 일상적으로 파괴하는 핵심 기제는 ‘소비의 세계화’다. 이는 환경이 자본과 상품의 순환망 속으로 말려든 것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모습이다. 개방화와 자유화로 상품의 초국경적 교역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일상소비는 세계 전역에서 생산된 저렴한 상품들로 채워지고 있다. 자유 교역의 확장으로 인해 상품에 대한 지구적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다. 이는 곧 원료, 중간재, 최종재 등을 생산하는 세계 각 지역의 환경에 대한 훼손과 교란의 압력을 높이는 자극이 된다.

소비의 세계화가 초래하는 환경파괴는 소비의 결과로 발생한 노폐물(예, 전자폐기물)이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에 의해 더욱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노폐물은 환경시장을 통해 제3세계로 흘러들어간다는 점에서 그 피해가 가난한 지역과 사람들에게로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노폐물이 가지고 있는 유독물질이 생태계의 흐름을 타고 무차별적으로 확산된다는 점에선 지구상의 모든 지역과 사람들이 피해를 겪는다. 지구 온난화는 소비자로서 우리 모두가 원인 제공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임을 보여주는 신자유주의식 환경문제의 대표적인 예다.

신자유주의는 지구촌 사람들이 꾸려가는 보편적인 경제활동의 방식이자 그 이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실제의 경제활동으로 조직되고 지역 특유의 환경문제로 구현되는 방식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한국의 경우, 신자유주의는 성장이란 이름으로 국토환경에 대한 규제를 풀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대상으로 바꾸는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성향의 이명박 정부 국정과제들이 대규모 토건적 개발 사업을 우선으로 하는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이렇듯 개발주의와 결합된 신개발주의로 그 구체적 모습을 하고 있다. 정책으로서 신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비즈니스 프렌들리’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데 역점을 둔다. 이에 견주어 개발주의와 결합된 한국적 신자유주의, 즉 신개발주의는 환경 속으로 시장논리를 침투시켜 상품으로 바꾸고(예, 자연의 물길을 운하나 관광지로 개조), 이를 통해 국토 전역에 다양한 투기적 경제활동을 조장하는 데 역점을 둔다. 그 결과 선진국과 달리 토건경제가 국민경제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

신개발주의는 ‘국토환경의 상품화’를 대대적으로 부추김에 따라 생명의 터전으로서 국토환경 전반이 전에 없는 파괴적 개발의 높은 압력을 받게 된다. 이로써 한반도에서 억겁의 세월 동안 꾸려온 민족의 생태 문화적 삶이 단절되고 한국사회가 경쟁력 있는 녹색사회로 발전해갈 가능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리의 자각의식은 놀라울 정도로 약하다. 이는 우리의 녹색 자의식이 집권세력이 유포하는 신자유주의 성장담론의 포로가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녹색성장이 새로운 지배담론이 되면서 신개발주의가 불러올 환경 파괴의 위험은 더욱 가려지고 있다. <끝>

<경향신문>을 위한 글/2009.3.21

조명래(단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