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개발이 필요한 그 곳 – 장수마을(서울 성북구 삼선4구역)

 

과거 주이탈리아 대사가 한국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되면 이탈리아만큼의 문화적인 풍요가 있을 것이라는 외신기자의 덕담에 “3만 달러 시대가 되어도 우리에겐 파바로티나 피렌체의 여유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일화가 있다. 풀어 말하면 똑같이 100을 벌어도 한국에서는 주거비 때문에 예술의 전당에 갈 수 없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주거비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절대적이다. 물론 상속이나 증여를 통해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결코 다수의 경우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만큼 소유재산으로써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의미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재테크의 수단으로 부동산을 꼽았으니 부동산공화국이라는 말이 한국사회를 대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흐름들이 변하고 있다. 경제활동 인구 층의 주력인 20~30대 인구가 2006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고, 서울 인구 또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던 2002년을 고점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렇게 이미 서울 인구는 포화상태이고, 더 이상 순유입이 없기 때문에 지방이 아닌 서울에서 조차 주택수요가 확대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일본을 예로 들며 거품붕괴를 경고했지만, 참여정부이후 이명박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주택시장 활성화라는 미명 아래 주택가격 연착륙을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집값이 한참 오를 때 부동산으로 재미를 봤다는 누구누구 네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여전히 유효한 공식으로 호도하고, 규제완화를 노래하며 공급을 부추긴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업자와 일부 부동산 광고로 연명하는 언론을 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측했듯 집값은 떨어지고 있다. 강남불패의 신화는 은마아파트에서부터 깨지기 시작했고, 공급과잉은 미분양 아파트 속출로 당연한 귀결을 맞고 있는 것이다. 2009년 통계로 서울지역 43개 재개발 뉴타운 구역 중 분양이 확정된 사업장은 8곳뿐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원주민 재정착은 고사하고 공급만을 부추기는 현행과 같은 재개발 뉴타운 방식을 고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수마을은 주택 대부분이 40~50년이 지난 노후주택이며, 도로는 가파르고 좁은 계단골목이다. 또 상하수도 시설은 취약하고 도시가스는 인입되지 못하는 등 기반시설이 미비하여 전반적으로 불량주거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도로정비 및 기반시설 확충을 포함한 주거지 정비사업이 절실한 곳이다. 


그래서 인지 이곳은 삼선 4구역이라는 이름으로 2004년 재개발예정지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구역 인근에 서울성곽과 삼군부총무당 등 문화재를 끼고 있으며, 북동방향의 급경사 구릉지라는 지형적 여건 등 제약요인이 많아 사업추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재개발사업이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현 거주민들이 주거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토지의 64%가 국공유지이며, 국공유지에 세워진 건물은 대부분 노후도가 심한 무허가주택이다. 따라서 토지보상비는 고사하고, 주택에 대한 보상금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동안 밀린 변상금(토지사용료)을 갚고 나면 빚을 내서 월세방을 구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근의 길음 뉴타운의 경우 원주민 정착률이 16% 남짓하고, 통상적인 재개발사업에서 조합원 분담금이 수억 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다. 더군다나 삼선 4구역의 경우 길음이나 정릉지역보다 기반시설이 더욱 열악해서 조합원 분담금은 늘어날 것이다.

 

반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발을 피한 덕분에 삼선 4구역은 근대 도시의 서민 주거지 형성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경사가 심하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다양한 동선을 그리며,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인위적이지 않다.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마을경관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삼선 4구역의 재개발이 불가한 이유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상의 정비사업 종류

정비사업유형

내용

주거환경개선사업

도시저소득주민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정비기반시설이 극히 열악하고 노후∙불량건축물이 과도하게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사업

주택재개발사업

정비기반시설이 열악하고 노후∙불량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사업

주택재건축사업

정비기반시설은 양호하나 노후∙불량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사업

-공동주택재건축사업, 단독주택재건축사업

도시환경재생사업

상업지역∙공업지역 등으로 토지의 효율적 이용과 도심 또는 부도심 등 도시기능의 회복이 필요한 지역에서 도시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사업


정비사업의 유형별 특성

구분

열악한 상태

비고

주민소득

주택

기반시설

주거환경개선사업

×

×

×

공공사업

주택재개발사업

×

×

공공/민간사업

주택재건축사업

×

민간사업

도시환경정비사업

상업지역, 공업지역


현재 삼선 4구역은 위의 표에서 구분된 네 가지 정비사업 중 주택재개발사업 예정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삼선 4구역은 주민소득 수준이 낮기 때문에 주민들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재개발은 추진하기 어렵다. 공공의 책임과 지원을 받는 더 강하게 규정하고 있는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용도 지역과 건축한계선
으로 개발이익을 기대할 수 없다.

– 도시계획제도 중 하나인 용도지역에 따르면, 장수마을은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7층 이하의 건물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서울 성곽(국가지정문화재)과 총무당(시지정문화재)이라는 2개의 문화재로 인해 높이 기준과 양각적용범위(27도), 이격거리(서울 성곽: 100m, 총무당: 50m) 규정을 적용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삼선 4구역은 낮은 층수(최고 5층 내외) 낮은 용적률(평균 130%)로 인해 일반 분양물량 확보를 통한 개발이익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장수마을이 재개발사업예정구역으로 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건설사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변상금, 높은 분양가
등으로 인해 재입주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

– 사람들은 그동안 개발 광풍으로 인해 재개발사업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헌 집’을 주면 ‘새 집’을 받거나 최소한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개발사업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내주더라도 적게는 1억원에서 많게는 3억원이라는 막대한 ‘조합원 분담금’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재산이 많거나 수입이 많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삼선 4구역의 경우 국공유지 비율이 64%에 이른다. 이 경우 토지 보상비를 받을 수 없고, 건물이 낡아 건물보상금을 받더라도 그 금액은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 특히 변상금을 내지 못해 밀려 있는 경우에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얼마 안 되는 건물보상금으로 변제해야 한다. 즉 최악의 경우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마을을 떠날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곳에 2008년부터 대안개발연구모임이라는 이름으로 각각의 영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있다. 마을이 지닌 가치와 기존의 커뮤니티를 보존 유지하면서 주민들의 삶의 질을 조화롭게 발전시킨다는 목적으로 3년째 활동 중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곳곳에서는 헌법에도 보장된 서민들의 주거권이 위협받고 있는 곳은 부지기수다.

한국사회가 진정 선진국으로 가느냐 못 가느냐의 바로미터가 바로 여기에 있음은 분명하다.

 

by 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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