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안전] 당_서청-열아홉번째 날-고등어의 비애

아침-복숭아 한 개

점심-야채밥(쌀밥, 콩나물, 당근, 버섯, 간장), 배추김치

저녁-사과 한 개, 누룽지, 오렌지 주스

 

이건 어제 썼어야하는 글이지만 잊어버리고 씻자마자 이불 속으로 쓰러져버렸기 때문에 오늘 써서 올려요. 고등어(=고등학생)은 슬픈 겁니다. 그나마 작년에는 싱싱한 고등어였지만 이제 묵은 고등어이고 내년이면 상한 고등어가 되겠지요. 갑자기 이런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요? 어제의 피곤한 심정 때문이랄까요. 정말이지 금요일이면 일주일의 누적피로가 쌓여서인지 아무 것도 하기 싫어져요. 방학 중에도 금요일만큼은 숙제도 공부도 손도 안댑니다. 물론 다른 날에는 열심히 한냐는 말에 드릴 대답은 “돌이킬 수 없는 최후의 순간이 오기 전에는 피합니다.”

 

뭐, 그렇다구요. 전 저질체력의 소유자라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면 벌써 쓰러졌을 지도 몰라요. 지금도 빈혈 때문에 가끔 걷다가 어질어질한데. 그런 의미로 내년이 두렵네요. 흔히-진짜 흔한지는 모르지만 고딩들 사이에는 흔합니다- 고3은 인외족(人外族)이라고 하지요. 인간이 아니면 뭐냐고 물으셔도 고3이라고 밖에 대답할 수 밖에 없어요. 고3은 인간이 아니라 그냥 고3일 뿐이라고들 합니다. 별칭은 상한 고등어. 설탕끊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딴 얘기를 왜 하냐는 말은 하지 말아주시길 바래요. 저도 모르거든요. 두드리다 보니까 나왔을 뿐.

 

이제 슬슬 수시쓰고, 그 인외족들의 입시가 코 앞으로 들이닥쳤지요. 저희 학교는 고3 건물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 고2들은 “쟤네 미쳤나?”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시끄러운 반면 어쩌다 볼 일이 생겨 고3 건물에 들어가면 쥐죽은 듯이 조용해요. 1년이 지나면 지금 저희 반에 있는 생물체-몇 명은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정도라면 믿어주겠지만-들도 복도를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엄청난 소음으로 느껴질 만큼 조용해질까요? 믿어지지 않는군요. 저야 수업시간에 떠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잡다한 소음 정도는 누구나 내지 않나요.

 

금요일은 참, 마음에 드는 날이지요. 전에 한 번 썼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저희 학교는 재림교(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보통 안식교라고 부르지만 교단에서는 재림교랍니다) 미션스쿨인 고로 금요일 해질 무렵부터는 성스러운 안식일이예요. 덕분에 금요일에는 수업이 일찍 끝나지요. 그래서 학원가기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는데, 집에 들렀다 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하네요. 일찍 끝나니까 학교에서 저녁 급식도 안주고, 시간은 넉넉한데-남아돌지는 않아요. 절대로! 사실 초고속으로 맹렬하게 흘러가서,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집에 가서 먹고오기는 좀 그렇고…

 

덕분에 제 저녁식사가 저렇게 부실해요. 이게 바로 고등학생의 비애입니다. 사실은 학원 때려치고 집에 친구 데려와서 놀고 싶었지만 저의 소심한, 그야말로 소시민적 사고방식은 땡땡이같은 걸 용납하지 않아서요. 어린애처럼 ‘학원을 그만두고 놀러가다니 바로 머리 위에 벼락이 떨어져죽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학원 빠진 결과를 거의 벼락맞는 것 만큼 두려워하니 결과적으로 나을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결과가 두려워서 못한다는 건 아니고 그냥 절대로 못해요. 제가 고결하기 짝이 없는 도덕적 성품의 소유자이거나 나쁜 짓은 생각도 못하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는 아닙니다만, 이상하게도 땡땡이와 거짓말 두 개만큼은 전혀 못하거든요.

 

왜 이렇게 자꾸 딴 데로 새지? 순서가 좀 바뀌었지만 점심 얘기를 할게요. 원래 저녁 애기를 하기 전에 써야했겠지만 잊어버렸거든요. 금요일의 좋은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뭐랄까, 특식같은 게 자주 나와요. 스파게티나, 짜장밥 같은 거요. 저는 개인적으로 스파게티를 좋아하는데 별로 자주 나오지는 않아서 입학하고 두세번 정도밖에 못먹어 본 것 같아요. 아무튼 이렇게 좋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괴로움을 안겨주는 메뉴입니다. 사실 오렌지 주스 먹었습니다만… 설탕과 초콜릿과 쿠키에 맹세코 무설탕이었다고 떳떳하게 말하겠습니다! 제가 성분표시를 얼마나 꼼꼼하게 살펴보고 또 살펴봤는데요. 사실 그냥 안썼으면 되는 일이지만…휴우~(거짓말 못하는 자는 얼마나 슬픈지)

 

학교가 끝나고 나서 동아리 회의를 했어요. 이 회의라는 게 또 걸작입니다. 일단 제일 큰 문제점은, 제가 기억하는 한 모든 회원이 모인 적은 한 번 뿐이었어요. 회원이 많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회장과 저까지 포함해서 5~6명 밖에 안되니 한숨만 푹푹 나오지요. 그리고 회의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전혀 없다고 확실히 장담할 수 있어요. 모든 회원이 모였을 때도 그냥 고등학생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저도로 집중력이 결핍된 인간-‘빨간머리 앤’ 시리즈의 미스 코닐리어를 흉내내자면, “남자들이 그렇죠, 뭐.”- 한 마리가 계속 돌아다니고, 잡담하고-다른 남자애 하나와 함께- 진행이 안됐습니다. 그 날 이후 그 녀석은 저에게 유딩으로 낙인찍혔지요.

 

그리고 남자들 두 마리가 없을 때도 도저히 되는 게 없어서-사실 그 동아리 회원들이 전부 친구들이예요- 수다를 떨면서 폭소하고 그래요. 그러다 이제부터는 진지하게 회의를 하자고 마음을 다잡기도 하지만 성과는 없어서 얼마 후면 또다시 폭소하고 있어요. 게다가 애초부터 회원도 아닌 친구가 하나 끼어있고, 얼마 안되서 다른 친구들-다른 동아리 회원들입니다-이 들어와서 기다리거나 같이 수다떨거나 해요. 이렇게 길게 말을 늘어놓은 이유가 뭐냐면, 그 다른 동아리 회원인 친구가 어제 과자를 잔뜩 가지고 왔어요. 물론 설탕은 들었지요. 유혹을 이겨내긴 했지만 괴로웠습니다. 저는 저녁 삼아서 싸간 사과와 누룽지를 먹으며 눈물을 삼켜야 했어요ㅠㅠ

 

우와, 뭔가 쓰다보니 엄청나게 길어졌군요. 앞으로도 글을 하루씩 늦춰서 써볼까…라는 유혹이 들지만 그랬다간 아침, 점심, 저녁 메뉴에 전부 ‘기억 안 남’이라고 쓰게 될까봐 무서우니 그만 두도록 하지요. 원래 이렇게 길게 쓴 글이 한 편씩 있으니 나머지 절대다수는 짤막해야 하는 법이예요.(원래는 항상 짧으니까 한 편 정도는 길어야 된다고 써야 맞겠지만…) 뭐 안그래도 길고 오늘치 보고서도 꺼야 하니까 발퀄-발로 쓴 퀄리티(quality), 한 마디로 못썼다는 표현입니다. 제가 쓰면 주제파악, 어떤 분들이 쓰면 겸양-이라고 할 만한 글을 전부 읽어야 하는 분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정리-원활히 진행 중.

 
1 Comment
  1. 한여름소낙비

    힘겹게 견디고 있는 너에게 번번이 딴지 걸어서 정말 미안하다만,
    주스 역시 우리 품목에는 먹지말아야 할 음식이야.
    주스는 무가당이라고 하더라도, 과일즙을 농축가열해 만든 원액을 운반해 와
    원래의 물 비율만큼 희석한 것으로, 설탕이 우리 몸에 들어와 미치는 해악과 동일하거들랑..
    얼마남지 않은 기간, 힘 내서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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