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환경책] 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김정아 옮김
돌배개
2007년 7월

_강창래

슬럼이라는 낱말은 빈민층의 주거지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 낱말에는 따닥따닥 붙어 있는 쓰러져가는 집, 인구과밀, 질병 그리고 인간쓰레기가 살고 있는 범죄의 온상이라는 뜻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은 그 슬럼이 신자유주의에 바탕한 세계화가 만들어낸 21세기 도시의 비극적 초상을 보여준다. 지구가 슬럼으로 뒤덮혀가는 현실과 그 이유를 밝힌다.

오래 전(2002년, 한국어판)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서 더글라스 러미스가 말했던 것처럼 경제개발이란 이데올로기는 세계를 서구식으로 재편하기 위한 것일 따름이다. 서구식으로 보면 개발되지 않았던 나라들은 그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최근 연구 결과도 ‘그랬음’을 보여준다. 고립된 섬과 같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을 연구해보니, 그들은 한 주에 다섯 시간쯤 일을 하지만 ‘선진국 과학자’들이 권장하는 인간의 하루 영양섭취량을 얻고 남는 시간은 ‘놀이와 예술’로 행복하게 살아가더라는 것이다. 지구에는 그런 사회가 1백 년 전만 해도 수없이 많았다. 그런데 겨우 한 세기 만에 그 오래된 세계들은 무참히 파괴되고 사람들은 메갈로폴리스의 슬럼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렇다고 도시가 예전처럼 많은 일꾼을 필요로 하기 때문도 아니다. 도시는 더 이상 사람들을 고용할 힘이 없어졌지만 시골 사람들은 제 땅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쫓겨나다시피 떠나야 했다. 오늘날 사람들을 시골에서 몰아내는 것은 어마어마한 자본을 가진 세계적인 유통회사들 힘이다. 값싼 농산물을 유통시킴으로써 농촌에서는 더 이상 생산할 방법이 없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시로, 도시로 모여드는 것이다. 물론 도시라고 해서 그들이 살아갈 만한 곳은 아니다. 그 결과로 비정규직 숫자는 늘어만 가고, 제도밖의 경제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슬럼은 무척이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서울에 쪽방이 있다면 홍콩엔 새장이 있다. 도시 빈민은 비용과 주거 안정성, 출퇴근 상황, 신변안전까지 고려하여 주거를 해결해야 한다. 일을 하는 노숙자들은 인력시장과 가까운 곳 또는 그곳으로 가기 쉬운 기차역 근처에서 지내는 것이 살아가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노숙을 선택한다. 물론 갈 곳도 없고, 있다고 해도 노숙하는 것보다 그다지 편안하지도 않다. 그들의 주거지역인 슬럼은 똥통으로 불러도 좋을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슬럼가에는 상하수도와 화장실 시설이 없다시피 하다. 가까운 중국 베이징의 슬럼에서는 화장실 하나를 6,000명 이상이 공유한다. 주민 절반인 500만 명이 화장실이 없는 뭄바이에서는, 어느 영화감독의 계산에 따르면, “1인당 0.5kg씩 눈다고 치고 매일 아침 250만kg의 똥이 쌓”인다.

전세계 인구의 1/3이 이런 슬럼에서 살아간다는 2003년의 통계(그러니까 그보다 많을 것이다)는 오늘날 세계의 지배구조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구조적인 분석과 함께 구체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놀라운 책이다. 세상이 어떻게 조직되고 있는지 또다른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늘과 내일의 환경 문제를 생각할 때 근본적인 질문과 해답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