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환경책] 인간없는 세상


앨런 와이즈먼 지음/이한중 옮김
랜덤하우스 코리아
2007년 10월

예진수 출판평론인

책을 읽으면서 마치 아이맥스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풀어내는 상상력이 눈부셨다. 저자는 마치 축구공을 멀리 뻥 차놓고 달려가듯 ‘지구 위에서 인류가 모두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이를 풀기 위한 지적탐험에 나선다. 생물학자, 해양생태학자, 지질학자 등 과학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인간 없는 세상 연대기’를 만들기도 하고 발품을 팔며 현장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한국의 비무장지대를 비롯해 터키와 북 키프로스에 있는 유적지들, 아프리카, 아마존, 북극 등 전 세계의 구석구석을 누볐다. 저자는 다양한 시공간과 학문의 영역을 넘나들며 인류의 묵시록으로 남을만한 책을 탄생시켰다. 여러 차례 되풀이해 봤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만화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보다 인류 멸망 이후의 모습이 훨씬 생생하게 잡혔다. 생태계 문제를 다룬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는 지구의 산업문명이 멸망하고 1000년 뒤 땅이 황폐해지자 부해로 불리는 균류의 숲이 번성하는 세계가 나온다. 이 책에서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인간이 사라진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어떻게 뉴욕의 지하철이 물에 잠겨 도시의 기반이 침식되기 시작하는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세계 전역의 도시들이 붕괴되면서 정글이 되어가는 장면도 실감 있게 다가온다.

인간이 사라진 뒤, 인간의 우월성에 대한 자연의 복수는 역설적이게도 인간들이 생명력의 원천이라고 예찬했던 물을 타고 온다는 섬뜩한 경고다. 저자는 “빗물은 지붕을 타고 내려와 못을 녹슬게 만들고 결국 목재로 만들어진 집을 무너져 내리게 할 것이며, 포장된 도로의 틈도 더욱 벌어지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 토끼풀, 갈퀴덩굴 같은 풀이 날아와 도로의 틈을 메워 5년도 안돼 강력한 뿌리가 인도를 밀어 올린다. 파나마운하가 막혀버리면서 남북 아메리카가 다시 합쳐진다.

반면 인간이 지구에 끼친 해악은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끈질기게 지속된다. 500년 뒤에도 플라스틱은 여전히 멀쩡하다. 3만 5000년이 지나야 굴뚝산업시대에 침전된 납이 간신히 토양에서 전부 사라진다. 카드뮴이 흙에서 완전히 제거되려면 7만5000년이 흘러야 한다. 10만 년 후에야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간다.

저자는 만신창이가 된 지구는 인간이 사라진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자연의 모습을 회복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이로운 어머니 지구의 치유능력이다. 그는 인간의 발길이 끊긴 한국의 비무장지대에서도 이 같은 미래상의 단면을 찾아봤다. 사실 지뢰 등으로 비무장지대가 야생동물의 낙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식물군의 경우 빠른 속도로 생태적 복원을 이루는 모습을 발견한 듯 하다.

그는 입체적인 지식과 취재력을 동원해 ‘인간 없는 세상’을 미리 내다본 뒤 이 같은 비극이 인류를 덮치기 이전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역설한다. 천년만년 지속될 것 같던 탄소문명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이 책은 소름끼칠 정도로 기발하면서도 과학적 논리도 갖춘 희귀한 책이다. 역설을 통해 자기를 반성하는 성찰의 힘을 인류가 갖게 되길. 그래서 자연과 인간이 화해할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다가오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