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환경책] 야생속으로

마크 & 델리아 오웬스 지음/이경아 옮김
상상의 숲
2008년 10월

칼라하리 사막의 절규

강창래 ∥ (전) 느티나무도서관 장서개발위원장

≪야생 속으로≫의 영어판 제목은 ≪칼라하리 사막의 절규Cry of the Kalahari≫이다. 이 책은 1984년에 나왔다. 벌써 30년쯤 전에 쓰여진 책이다. 한국에서는 왜 이제야 번역되었을까? 외국에서는 아직도 이 책을 읽고 있을까?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 책은 아직도 읽히고 있었다. 아마존닷컴에서 찾아보니 아직도 책 판매량이 대단하다.

이 책이 이렇게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환경이라는 주제가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읽어보면 드라마틱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책읽기의 즐거움이 이 책을 더 오랫동안 살아남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야기는 결혼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젊은 부부 생태학자가 몇 푼 안되는 전 재산을 털어서, 무작정 아프리카로 떠나는 데서 시작한다. “당장 가지 않으면” 아프리카의 야생지역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들을 아프리카로 몰았다. 그들이 간 곳은 동물들이 아직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곳, 야생동물보호구역이었던 중부 칼라하리 사막이었다.

이야기의 성격으로만 보면 제인 구달의 책, ≪인간의 그늘에서≫(제인 구달/최재천, 이상임, 사이언스북스, 1971/2001년, In the Shadow of Man)와 비슷하지만 제인 구달은 처음부터 세계적인 생태고고학자인 루이스 리키 박사의 권유로 시작했고, 리키 박사는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제인 구달의 연구 성과는 놀랍지만 그 이야기는 제인 구달의 열정만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야생 속으로≫의 마크와 델리아에게는 열정밖에 없었다. 그들이 위험한 곳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만일의 경우 그들은 아무도 모른 채로 그냥 죽을 수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연구를 그만두어야 할지도 몰랐다. 돈이 없어서 중도에 그만두고 돌아간다면 여비 마련을 위해 일거리라도 구해야 할 처지였다.

나에게 이 책의 이야기는,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알리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칼라하리 사막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만들었다는 결과보다 그들의 열정적인 삶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은 많이 쓰이지만 그 말을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프리카로 가야 한다”는 뜻 하나만으로 그들은 “준비 없이” 아프리카로 떠났고, 그곳에서 칼라하리 사막과 부딪쳤다. 칼라하리 사막의 “어디”라는 것도 현지에 가서 선택했다. 이 책의 이야기에서 절실함과 안타까움, 스릴, 서스펜스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그것 때문일 것이다. 위험한 고비마다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우연”한 일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삶은 끊임없는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연”은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 없다는 불안감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우연”이 없다면 드라마도, 즐거움과 괴로움도 없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물음이 있었다. 왜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할 수 없는 것일까? “인공적인 것”과 “자연스러운 것”은 왜 반대이거나 적대적인 것일까?(≪인간 없는 세상≫을 보면 아메리카의 아름답고 덩치도 컸던 짐승들이 멸종한 이유는 작은 짐승-인간-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몰랐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인간은 바이러스 같은 동물이다. 인간이 지나가는 곳은 어디나 황폐해진다. 자신의 숙주마저도 없애버린다”는 대사가 나온다.) 사람도 자연을 숙주로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인데 왜 자기 파멸의 길을 수정하지 않는 것일까?

마크와 델리아(저자)는 오랜 세월 동안 연구비 부족으로 고생하며(하던 연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돌아갈 여비를 벌기 위해 일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음 고생이 심했다) 칼라하리에서 생활하다가 처음으로 지원을 받게 된다. 그때 그들은 요하네스버그까지 나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가장 먼저 빵집에 들른다. 그곳에서 산 여러 가지 빵이 가득 든 “하얀 상자 꾸러미를 잔뜩 들고 녹음이 우거진 공원으로 가서 갓 구운 빵에서 풍기는 달콤하고 따사로운 향기를 마음껏 들여마시며 차례로 먹어 치웠다. 입가에 하얀 설탕 가루를 잔뜩 묻힌 채 오랜 만의 호사로 놀란 배를 진정시키며 풀밭에 누워 한껏 웃고 떠들었다.” 그들 역시 “인공적인 것”, 자연을 약탈해서 만들어진 문명 속으로 돌아왔을 때 오랜 만에 편안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자연 보호”라는 말 속에는 인간을 위해서 자연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말느낌이 담겨 있다. 그 말 역시 자연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인 것이다.

이 책의 이야기가 지니는 가치는 ≪안개 속의 고릴라≫(다이앤 포시/최재천, 남현영, 승산, Gorillas in the Mist, 1983/2007)나 ≪인간의 그늘에서≫와 같이 외부 지원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연구 결과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 두 권의 책 뒤에는 묘하게도 같은 사람, 루이스 리키 박사가 있었고, 리키는 그 저자들에게 그 연구의 중요성을 전해주었을 뿐 아니라 아낌없이 지원했다. 만일 인간의 반자연적인 속성이 도시화 또는 대규모 집단화, 그리고 잉여생산물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이 책은 적어도 그런 배경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이 연구서가 아니라 “사자, 갈색하이애나, 검은등자칼, 새, 땃쥐, 도마뱀을 비롯”한 동물들과 함께했던 생활기록이라고 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