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집 주면 새집 줄게' 신화의 몰락

행정이 할 수 있는 일이 무한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말이 실재했던 당시엔 뚝딱하면 댐이 놓이고, 여차하면 공장 굴뚝이 올라갔으며, 한달음에 작은 집들은 빼곡한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습니다. 도시정책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뉴타운·재개발 정책이 바로 그 전형입니다. 사실 그 시절을 추억한다면야 추억이야 가능하겠지만 되돌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댐이 놓이면서 자연 한 귀퉁이는 절단 났을 것이며, 공장 굴뚝이 올라가면서는 시커먼 먼지 뒤에 누군가는 폐병을 호소했을 것입니다. 또 아파트 단지가 늘어서면서 어떤 누군가는 변두리 비닐하우스를 지붕 삼아 남루한 인생을 한탄했을 터이니 그 시절로 돌아간다는 건 천부당만부당 한 일입니다. 누가 뭐래도 21세기 아닙니까. 누구 말마따나 국격 따지는 OECD에 가입한 대한민국 아닙니까. 그리고 또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누구 덕이냐는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살 수 있게 된 것은 누구누구 대통령 덕이나 누구누구 시장 덕이나 어느 기업 덕이 아니라 절단난 자연, 폐병 걸려 신음한 누구, 비닐하우스의 누추함을 견뎌야 했던 또 그 누구를 밟고 일어선 덕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지난 57일 서울시 주관의 뉴타운·재개발 시민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토론회는 일말의 토론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종쳤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고성과 욕설, 그리고 몸싸움은 결국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로까지 번졌지만 토론회 자체는 중단되었습니다. 고성을 내지르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크게 둘로 나뉘더군요. ‘뉴타운· 재개발 자체에 대한 반대그리고 서울시가 뉴타운·재개발에 딴지거는 것에 대한 반대였습니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서울시는 합리적인 선택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진행해온 뉴타운·재개발은 잘못되었으니 대안을 찾아보자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업들이 진행된 곳 중 되돌려야 하는 곳은 되돌리고, 계속 진행하는 게 맞다고 판단이 서는 곳은 조속히 진행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소리치고 몸싸움을 벌였던 시민들은 왜? 서울시는 또 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행사장에서 소요를 일으킨 시민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우선 서울시가 설명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시민토론회라고 이름 붙여 놓고서는 정작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기에는 형식상 불가능한 구조였거든요. 발제 자체가 정책 방향, 제도개선 대안 마련 등 시민들의 목소리를 차근하게 듣고, 대화하기에는 맞지 않는 주제였습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전문가들이 모여 이것저것 길고 짧은 것 대가며 논의하는 자리였어야 하는 게 합당해 보입니다. 시민들과 이야기하는 자리는 그 이전 과정과 이후 과정에서 마련해야 옳지요. 한마디로 서울시는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하려는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자리에 있었던 시민들 탓도 하겠습니다. 더 이상 지금껏 진행해온 뉴타운·재개발 방식 같은 도시개발정책은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재크가 오른 콩나무 같았던 서울의 아파트 값도 자칫 바벨탑이 맞았던 결론으로 마무리 지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까지 소외되고 변두리로 밀려나 참아야만 했던 아픔은 이제 3무세대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에게로 옮겨가고 있고, ‘하우스 푸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러니까 기존 도시개발 정책을 여전히 원하는 시민들께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이 헌집 주면 새집 주는 신화를 이젠 버리시지요. 또 진보적인 시장이 당선되었다하더라도 또 다른 무소불위의 행정 권력으로 물길을 과거와는 정반대로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뉴타운·재개발 정책 자체에 반대하시는 시민들께서는 행정에게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뿌리 깊은 불신과 갈등의 고리가 여전히 존재하는 속에서 이제 다른 꿈을 꾸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그 과정에서 질책하고 소리 높여 요구하십시오.

 

한국사회에서 주택은 주택 이상의 의미를 과분하게 가져왔습니다. 일가의 전 재산이 주택에 쏠려 있었고,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의 품격을 말 합니다따위의 천박한 광고가 이야기되는 사회였습니다. 그런 사고방식 자체와 또 그것을 뒤에서 앞에서 부채질하고 이끌었던 편협한 행정의 질주가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꿈을 꾸는 것에 불안해합니다. 집 수 채씩 가지고 있는 어떤 이들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까지도 인생 전체가 집 한 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바뀔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변화에 대한 내면의 열망들이 모여 정파성에 기대지 않은 박원순이란 사람을 서울시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시민들은 새로운 꿈을 꾸고 그 꿈을 담을 수 있는 튼튼한 그릇을 서울시가 만들어 가야 합니다.

 

 

  by 롭다

 

아래는 관련한 환경정의 성명서 전문입니다.

 

 

서울시의 뉴타운·재개발 출구전략은

관행적 행정행태 출구전략에서부터

– 57일 서울시의 뉴타운·재개발 시민 토론회를 계기로

 

지난 57일 서울시 주관으로 진행된 뉴타운·재개발 시민 토론회는 파행을 거듭하다 결국 30여분 만에 중단되었다. 서울시에서 뉴타운·재개발 출구전략으로 내놓은 지난 1.30 대책(사회적 약자 보호형 전환)의 후속 과정의 하나로 준비된 시민과의 프로그램은 경찰 출동에도 진정되지 않는 몸싸움과 욕설로 마무리된 것이다. 뉴타운·재개발 사업에 대한 갈등과 불신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면철거 방식의 도시정책은 지금까지 수없이 지적돼온 원주민 소외, 저렴 주거지의 대량 멸실, 획일적인 도시경관 조성 등 구조적 문제를 내포한 해묵은 사회 갈등요소다. 거기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한 2002년부터 시작된 뉴타운사업은 2012년 현재 서울시가지 전체 면적 중 17.2%가 정비구역으로 과다 지정되는 등 싸움판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초래했다. 뉴타운 사업은 85이상 중대형 위주의 주택공급으로 사실상 현재 한국사회의 가계구성 상황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정책입안자가 주장했던 (논리적으로 맞지 않지만) 경기활성화를 위한 주택시장 활성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누구 말마따나 IMF 이전 상황에 기댄 문화지체 현상에 정책결정자 스스로가 빠져있었던 셈이다.

서울시 도시정책에서 지금껏 벌려놓은 혼란과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몫은 자의든 타의든 이제는 박원순 시장 주도의 서울시정에 공이 넘어와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서울시가 내건 사회적 약자 보호형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반갑기만 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부분이 명확해졌다. 바로 서울시가 주장하고 실행하려는 뉴타운·재개발 사업의 출구전략과 도시정책의 사회적 약자 보호형으로의 전환에 대한 실효성을 담보하는 부분이다.

 

1. 갈등조정위원회 조정관의 위상과 권한을 현실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뉴타운·재개발·재건축 총 1300여개 구역 중 866개 구역을 조정관이 나서야 할 갈등조정 대상구역으로 분류했다. 이후 100여명의 조정관들을 구성해 운용 중에 있다. 31조로 팀을 구성한 조정관들은 대상지의 조합, 반대파, 공공 등을 만나 의견을 청취하는 형태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야기했듯 소통을 통한 갈등 조정을 위해서는 조정관의 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 바닥에서부터 불신을 없애고 서울시가 추구하는 본의를 이해시키기 위해선 더욱 광범위한 조정관들의 조정행위가 가시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조정관 구성에 있어 시민사회 구성원들보다 정비업, 감정평가사 등 업계 관련 인사들이 80~90%로 월등한 것도 개선되어야 할 과제다. 거기에 더해 조정관들이 현장 중심으로 갈등조정 대상지역을 선정하고 개선책 마련에 현실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재 조정관의 업무 자체는 이야기를 청취하고 정리하는 것 정도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통 자체가 중요하기는 하나 그에 뒤이어 현장의 시각과 괴리되지 않는 조정안과 해결책을 정책으로 구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 현장에서 OS요원(홍보도우미) 활동을 제재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뉴타운·재개발 현장에서 항상 문제였던 것 중 하나가 OS요원 활동이었다. 조합이나 시공사가 OS요원을 동원해 지역주민들을 괴롭히다 시피해서 받아낸 서면결의서가 조합 총회에서 현장 투표와 마찬가지로 사업진행, 시공사 선정 등에 영향력을 행사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서면결의서의 임의작성, 위조 등의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실제 주민의 동의가 있었다하더라도 왜곡된 방향으로의 의사결정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공공관리제를 통해 최초로 시공사가 선정된 동대문구 답십리동 대농·신안 재건축사업 조합 총회에서는 OS요원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공공관리제가 시행되어 시공사 선정에까지 이른 대농·신안 재건축사업의 사례 자체의 다른 문제점들은 차치하고 OS요원의 활동 금지 자체는 괄목할만한 사항이다. 하지만 2010년 도입된 공공관리제가 확대되기엔 시간차가 분명 존재하고, 현실적인 저항도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해서 개정된 도정법에서 규정하지 못하고 있는 OS요원의 활동 무력화를 위한 방안을 조례 개정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서면 결의·동의서의 한계, 작성방법 개선을 통한 안전장치 마련 등을 제도화해 의사결정과정의 왜곡을 최소화해야 한다. 현장에서 주민들의 어려움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행정이 고민하고 법제로 입안하는 길만이 도시정책에서 땅
에 떨어진 행정에 대한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이다
.

 

3. 서울시는 시민과 소통하는 프로그램 기획에 있어 행정편의주의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지난 57일 무산된 뉴타운·재개발 시민 토론회1.30 뉴타운·재개발 출구전략과 이를 반영한 도시·주거환경정비조례 개정안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서울시가 마련한 자리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짐작하건데 앞으로 있을 시민 토론회나 지역별로 진행될 설명회 성격의 주거재생 시민아카데미에서도 파열음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안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행사장에서 소요를 일으킨 시민들만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무산된 어제 토론회의 내용은 뉴타운 출구전략 이후 구체적인 대안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조명래 단국대교수와 장남종·이성창 시정개발연구원의 발제 내용은 정책방향과 제도적 대안마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달리 말하면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의견을 수렴하며 또 서울시의 방향을 이해시키는 자리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시민 토론회라는 이름으로 두 가지를 한 번에 취하려고 과욕을 부린 것이다. 이는 분명 행정편의주의에 근거한 요식행위와 다름 아니라고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가뜩이나 자신들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민감한 문제로 뉴타운·재개발 문제를 대하는 시민들에게 형식상 자신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의 시민 토론회는 분란거리를 제공하기 충분한 측면이 있었다는 말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왜곡된 서울시의 전면철거 방식의 도시정책은 그 효용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이대로 간다면 항구적인 사회 갈등요인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뉴타운으로 대변되는 개발이익에 기댄 도시정비는 도려내지 않으면 안 되는 암 덩어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에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으려는 박원순 시장의 노력과 고민의 지점은 충분히 공감한다. 다만, 그 본의가 왜곡될 만큼 관행적인 행정행태로 진행되고 있는 몇몇의 현상들이 심히 우려스럽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주민 중심의 올바른 방향으로 도시정책이 전환되기 위해선 현장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그릇을 행정 안에서 만들어야 하고, 시민 편에서 불합리한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진정성을 보여야 하며, 그러한 노력들을 시민들에게 바로 알리기 위한 방법을 시민의 입장에서 고민해야 한다. 그런 노력들이 서울시정 전반에 투영되어야만 정파성에 기대지 않고 박원순 시장을 시장으로 만든 시민들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는 길이다. 박원순 시장이 시민의 바람을 다시 한 번 상기하기를 바란다.

 

 

 

  201258

 

환 경 정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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