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공동대표] 군대사회로부터 탈피

<경기신문> 월요논단 글/2014.08.10.

군대사회로부터 탈피

조명래 (단국대 교수)

 

세월호 참사 후 각종 사건.사고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그 흐름을 보면, 모든 게 하나 같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깊은 모순이자 병폐를 드러내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선임병들의 집단적인 괴롭힘에 목숨을 잃은 윤일병 사건은 그 백미다. 존중하고 배려하며 소통하는 성숙된 민주시민적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었다면 겪지 않을 비극적 사건들을 최근 우리사회가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뿌리는 한국사회의 오래된 ‘군대문화’다.

인간의 죄악 중 가장 높은 수준이 살인이지만, 군대는 이를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집단이다. 그러니 인간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의 최대치는 군대란 제도이자 문화라 할 수 있다. 나치 치하에서 수백만의 목숨을 잃었던 유대인들은 그들이 당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폭력을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들에 가하고 있는 것도 그 저변에 군대란 제도와 문화가 있다. 200만명의 동족을 죽이고, 지금도 총부리를 맞대고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한반도의 남북적대도 ‘그들이 우리를 노리니 우리는 그들을 적으로 삼지 않을 없는 군대식 사유와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살인을 집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군대는 철저하게 위계적이고 강압적 방식으로 구성원들을 훈육시킨다. 군대는 그래서 ‘개인, 비판, 반대, 저항, 항거’등을 기본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조직문화를 최대의 미덕으로 삼는다. 군대란 조직문화 속에서 개인은 곧 전쟁기계가 되어야 하는 바, 그 자격조건은 상하 복종, 명령, 통제를 철저하게 따른 것이다. 따라서 군대에선 비판, 저항, 항거는 어떤 경우이든 허용되지 않는다. 명령불복종이 군대에서 가장 큰 범죄가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에선 정상적인 남성 젊은이라면 누구나 군에 간다. 그곳에서 젊은이들은 상급자의 통제에 자기 신체를 철저하게 순응하면서 상급자의 관점으로 하급자의 신체를 철저하게 길들이는 것을 배운다. 대부분의 제대자들은 군을 마치자 마자 사회생활을 본격 시작한다. 통제를 당하면서 통제를 행하는 가운데 조직의 질서와 존속을 최우선시 하는 군대식 의식은 그래서 한국인들의 조직생활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기초가 된다. 가정, 학교, 직장,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생활 대부분은 알게 모르게 군대식 문화를 기저에 두고 있다. 국가기구들이 국민약자를 대하고, 권력화 된 재벌과 언론이 소비자 시민들을 대하며, 개인조직에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대하고, 가정에서 부모가 자식을 대하며, 친구관계에서 힘있는 친구가 힘없는 친구를 대하는 비대칭적 관계에는 군대식 억압.통제.배제의 기제가 예외 없이 스며있다.

억압, 통제, 폭력을 정당화하는 군대문화에 젖은 이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체제의 기득권적 가치 존중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반면, 약자의 요구나 체제 도전적인 주장을 일체 용납하지 않으려는 사고와 태도의 경직성이다. 그것은 군대 내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의 비판, 저항, 반대를 일체 허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보수기득세력들에 의한 진보세력들의 주의.주장을 종북좌파로 몰아세우면서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는 각종 시도들은 기실 ‘이병장 일당이 윤일병을 집단 구타해 죽음으로 내몬’ 군대문화가 사회화된 현상에 다름 아니다.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선진화는 이렇듯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한 군대식 문화를 척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집단구타에 의한 윤일병의 죽음은 모양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군대식 문화에 물든 우리의 일상문화를 바꾸지 않고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살인을 정당화는 특수집단으로 군대를 하루아침에 없앨 순 없지만, 개인의 인간성과 기본권마저 무시하면서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명령, 통제, 억압을 행하는 한국식 군대문화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없앨 수 있다. 선진국 군대에서는 인권과 군권이 공존하면서 그 능률성이 우리 군보다 훨씬 높다. 이를 볼 때, 한국의 군대식 문화는 척결 가능할 뿐 아니라 반드시 척결되어야 한다. 이는 군대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한국사회가 군대사회란 자기족쇄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