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베이비 로션, 더 순하다는 건 거짓말

“영유아용 화장품이라고 해서 광고가 보여주는 것처럼 특별히 더 순하거나 유해 성분들이 전무하지는 않다. 영유아용 화장품은 지금 우리가 쓰는 성인용 제품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른의 화장품에 비해 아주 약간 순할 뿐이다.”

지난 11월 27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은주 NIC화장품연구소 대표는 “화장품 업계의 화려한 마케팅에 속지 말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화장품 회사에서 화장품 성분을 연구하는 일을 하다가 2008년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 책을 내어 화장품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인물이다.

이 대표는 “영유아용 제품이 정말 순하다면 당연히 성인용보다 보관기간도 짧고 어린 피부에 필요치 않은 색소나 향료 등은 전혀 들어가지 않아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실체를 살펴보면 성인 제품에 들어가는 향료, 파라벤, 합성계면활성제 등의 유해 성분들이 버젓이 함유돼 있다”고 말했다.

◇ 파라벤 만큼 독한 화장품 속 화학물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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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장품에서 파라벤이 빠지는 추세다. 그러나 파라벤 만큼이나 유해성이 지독한 성분들이 여전히 있다. 페녹시에탄올(보존제), 합성계면활성제, 향료 등이 바로 그것이다. 기업이 강조한 광고 문구 말고, 각각의 성분을 따져 보고 아기 피부에 바를 제품을 고를 수 있으면 좋겠다. 면역체계가 바로 잡히지 않은 아기의 혈액과 호흡기에 침투될 유해물질을 최소한도로 줄여주는 게 엄마의 역할이다.”

이은주 대표는 화장품에는 수십 가지의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는데, 아이 부모들이 그중 가장 눈여겨보고 주의해야 할 것으로 파라벤을 대체하고 있는 보존제인 페녹시에탄올과 함께 합성계면활성제, 향료를 지목했다.

우선 페녹시에탄올은 사용 역사가 짧아 유해성에 대한 보고가 파라벤만큼 많지 않을 뿐, 이미 피부 알레르기 유발, 암 유발 등이 의심되는 물질로 지목돼 관련 연구가 한창인 화학물질이라고 이은주 대표는 설명했다.

합성계면활성제는 모든 화장품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인데, 혼합 가능한 경우의 수가 많아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합성되는 게 특징이다. 합성계면활성제 중 가장 나쁘다고 알려진 물질이 바로 소듐라우릴설페이드이다. 이 물질은 미국 환경 연구단체인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 외에도 여러 단체가 주요 발암성분으로 지목한 바 있다.

석유 원료를 추출해 만드는 인공향료는 호흡기 질환은 물론 두통, 가려움증, 색소 침착 등이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힌다. “향을 내는 비결은 기업이 영업 비밀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물질을 써서 어느 방식으로 화합됐는지 실체를 알 수 없어 위험성이 더 높다”는 게 이은주 대표의 설명이다. 미국 국립과학원도 인공 향료를 신경독성 검사에서 가장 먼저 다뤄야 할 유해 화학물질로 꼽고 있다.

◇ 영유아용 화장품 기준 = 성인용 화장품 기준

“임신하기 전에는 임산부와 영유아에 대한 화장품 가이드 기준 등 체계와 정보 공개가 이 정도로 열악한지 몰랐다.”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 출간 이후로도 화장품 성분 연구에 매진해온 임신 8개월의 이은주 대표는 최근 가장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 바로 현행 화장품법에 영유아용 기준이 전혀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직접 외국의 연구 결과와 보도 등을 찾아보니 영아의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 혈액에서 뇌조직으로 물질의 이행을 제한하는 관문으로, 뇌를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차단하는 기능을 담당한다)이 형성되는 시기에 관한 논문이 있었다. 혈뇌장벽이 완전히 형성되는 6개월 이전까지는 아기에게 그 어떤 화학물질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은주 대표의 지적대로 우리 화장품법에는 영유아용 화장품을 관리하는 기준이 없다. 다시 말하면 영유아용 화장품을 만드는 기준과 성인용 화장품을 만드는 기준이 똑같다는 것이다. 단지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화장품 기업들의 광고 문구와 마케팅 수단만 달라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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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법을 보면, 영유아용 화장품이라는 문구는 존재하긴 한다. 화장품법 시행규칙 별표3은 ‘화장품 유형과 사용 시의 주의사항’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 ‘만 3세 이하의 영유아용 제품류’라는 분류가 있다. 그런데 영유아용 샴푸와 린스, 로션과 크림, 오일, 인체 세정용 제품, 목욕용 제품 총 5개 제품군이 있다는 것을 정리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나마 이게 만들어진 것도 올해 9월 24일의 일이다.

영유아용이나 어린이용 화장품 기준을 만들려는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식약처 국감에서 곽정숙 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피부 표피층이 얇고 민감할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화장품 기준이 필요함에도 별도 기준 없이 시판되고 있다”며 “어린이제품에서 ‘어린이’가 몇 살을 지칭하는지, 영유아에게는 위해한 성분이 제외돼 있는지 등 구체적인 기준이 전혀 없다. 화장품 제조사에서 ‘어린이 제품’이라고 광고하고 판매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 전 의원이 제시한 대안은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어린이용 화장품 기준을 만들어 관리하라는 것이었는데, 식약처가 뒤늦게 만들어놓은 것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만 3세 이하의 영유아용 제품류를 정리한 것뿐이다.

영유아용 화장품 기준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19대 국회에서도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2013년 2월 안홍준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비롯한 11명의 국회의원들은 영유아, 임산부, 노인에게 적용되는 별도의 화장품 안전성 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품질인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화장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근 피부가 일반인보다 민감한 영유아, 임산부, 노인 등 특별히 보호가 필요한 대상을 위하여 특화된 화장품의 출시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화장품의 사용에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화장품의 안전성에 대한 기준이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것과 같이 그대로 적용되어 영유아, 임산부, 노인 등의 피부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제안이유에도 불구하고 이 개정안은 발의된 다음 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로 회부됐을 뿐, 아직까지 복지위 전체회의에 안건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계류돼 있는 신세다. 2년이 다 돼 가도록 안건상정도 되지 못한 개정안에 희망을 걸어도 되는 걸까?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 영유아용 기준 만들지 않은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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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주무부처인 식약처의 의지는 어떨까? 베이비뉴스가 확인한 결과, 식약처는 영유아용 화장품 관리 기준에 대한 검토가 무의미하다는 입장이었다. 식약처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며 기자에게 이렇게 답변했다.

“아기에게 발라서 해로운 성분이라면 성인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로운 성분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따로 구별하고 있지 않다.” 이는 영유아, 임산부, 노인을 위해 별도의 관리 기준이 필요하다는 화장품법 개정안의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다만 이 관계자는 “파라벤류와 같은 성분은 규제가 엄격한 편에 속하는 EU의 화장품법을 따라가려고 검토 중”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식약처는 유럽연합이 화장품 사용을 금지할 예정인 이소프로필파라벤, 이소부틸파라벤에 대해 지난해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을 두고, 지난 10월 국감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정부 관계자들에겐 ‘낯설 수도’(?) 있지만, 영유아의 경우 일부 화학물질에 대한 반응이 성인에 비해 강하게 나타날 수 있어 영유아에 대한 유해물질 관리기준이 별도로 마련돼야 한다는 것은 화학 독성 물질을 다루는 학계를 비롯해 환경 단체나 시민 단체 등이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이슈다.

이주영 녹색소비자연대 본부장은 “아직 신체발달이 덜 된 아기들에게는 조금이라도 위험 가능성이 있는 물질이라면 화장품에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적극 동의한다. 덴마크나 EU의 화장품 기준처럼 영유아에게 사용 금지 성분을 정해주거나 성분 함량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물론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국내에 영유아 화장품 관련 기준이 과연 생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유기농 화장품이라는 분류 하나 정하는 데만 해도 수많은 절차와 시간을 거쳤다. 이런 상황에서 영유아 화장품 성분 규제가 생기길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화장품에 ‘특정 성분’을 사용하지 말라는 게 아닌 ‘특정 문구’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정들이 더 마련될 예정이다, 이렇게만 해도 소비자가 구매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영유아 화장품을 만드는 기업에도 이런 방식의 규제와 변화를 기대할 수 있어야 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형식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원 교수는 “최근 이슈로 떠올랐던 파라벤의 경우는 성인보다 유아, 어린이에게 독성이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맞다. 파라벤의 대체 보존제로 새롭게 등장하는 성분들도 완전히 믿기는 어렵다. 영유아용 제품군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에 대한 전반적인 유해성 평가와 함량 기준 설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형식 교수는 “정부가 이런 일들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Tip. 화장품 속 화학물질 쉽게 확인하는 방법

화장품 전성분표시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직접 가게에 가서 제품의 뒷면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는 원하는 화장품의 성분정보를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화장품 성분분석 애플리케이션 ‘화해’(화장품을 해석하다)를 사용하면 휴대전화로도 화장품 속에 들어있는 각종 화학물질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12월 2일 기준으로 총 2만 8948개 화장품에 대한 전성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서비스되고 있는 이 앱은 현재 70만 명이 넘게 사용 중이다. 아직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를 위한 버전만 있다. 아이폰 사용자를 위한 버전은 현재 개발 중이다. 

2014-12-03,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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