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70주년] ⑤ 말을 잃어버린 제주-북촌리 학살 현장에서

생전 처음 찾은 제주도는 을씨년스러웠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는 태풍을 방불케 했고, 곳곳에 무슨무슨 리조트들이 들어서서 눈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2018 동행 ‘불편한 제주 기행’ 이틀째.

북촌리 ‘너븐숭이 기념관’을 찾았습니다.

북촌리에서는 4.3항쟁 때 마을 주민 절반이 죽었다 합니다.

소설 <순이 삼촌>의 배경이 된 곳이지요.(현기영 작가는 소설 발표 후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합니다.)

 

살인 연습 삼아서 학살이라니!

4.3항쟁 당시에는 말로 못할 끔찍한 학살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영화 지슬’에서처럼 동굴에 숨어든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무작위로 잡아다가 정방폭포에서 수장시키고, 죽창으로 찔러 효시를 하고….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잔혹한 일은 다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아무죄도 없는 사람을 죽인 이유가, 군대에 들어와 사람을 죽여본 적 없으니 ‘연습 삼아 죽여 보라’는 명령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쓰여 있었지요.

죽은 사람 생각에 서러워 통곡하다가 또 고초를 겪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주도 사람들은 침묵했습니다. 아니,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제주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했고, 연좌제에 묶여 평생을 고통받았습니다.

국가는 결코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을 버렸습니다.

4.3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에게조차 말하지 않았습니다. 학살 현장에서 공부하고 뛰어노는 자식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뱅듸? 병듸? 제주 말을 쓰면 빨갱이라고!

지인에게 들은 얘깁니다. 다른 지인이 말하기를 ‘학교에서 제주 말을 쓰면 죽도록 맞았다’고.

한국에서 표준어를 가장 잘 쓰는 건 제주 사람이라고.

제주 사람이 표준어를 쓰면, 스스로 제주 사람이라는 걸 말하기 전에는 모른다고 합니다.

제주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빨갱이’라는, 어원조차 알 수 없는 낙인을 찍어 버리기 때문에 제주말을 버린 것이지요.

그렇게 숨 죽이고 산 지 70년.

지금은 일부 70~80대 어른들을 빼고는 고유한 제주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네요.

문화적인 면으로 봤을 때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게 닫혀 있던 입이 열린 것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였습니다.

 

 

2003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사과를 했습니다.

2009년에는 너븐숭이 기념관이 건립되었습니다.

아직 진실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책임자가 처벌받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역사가 침묵 속에 묻히는 일만큼은 면하게 됐습니다.

아래 사진은 해설자인 마을 주민께서 환경정의 활동가들에게 설명하는 모습입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이 학살의 현장이었노라 얘기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영문도 모르고 많은 사람이 죽었노라고.

어디 한 곳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곳이 학살 현장인 줄 알았다면!

특히나 이곳, 북촌초등학교는 건물만 바뀌었지 당시와 같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운동회 날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 오셨는데, 학살 현장에서 운동회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땠을지…”

해설자 분의 말씀입니다.

운동회라고 마냥 신이 났던 어린 시절, 도시락 싸 들고 오신 어머니 심정이 어땠을지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그 생각만으로도 북받쳐 오르는 걸 억누르셨습니다.

 

 

학교 안 한 귀퉁이에 참사 현장을 알리는 비석이 서 있으니, 현재를 살아가는 이곳 아이들은 또 어떤 심정일까요?

 

 

북촌초를 지나 조금 가면 순이삼촌 문학비가 서 있습니다.

이곳에 널브러진 비석들은 당시 학살당해 쓰러져 있던 시신들을 재현한 것이라 합니다.

 

무덤인 줄도 모르고 놀이터 삼아, 우리 때문에 훼손되었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너븐숭이 기념관 앞.

이곳에는 애기무덤이 있습니다.

애기무덤은 원래부터 있던 풍습이었는데, 4.3항쟁 당시에 학살당한 많은 아이들 시신을 따로 수습하지 못하고 이곳에 묻었다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강요된 침묵이 풀릴 때까지 몰랐기에, 해설자 분은 어릴 때 이곳을 놀이터 삼아 놀았다 합니다.

그 때문에 많이 훼손되었다고요.

이곳이 무덤이란 사실만 알았다면…

그렇게 아픈 역사가 묻혀 있다는 걸 알았다면…

아무리 철없는 아이라도 함부로 손을 대지는 않았을 테지요.

 

 

제주에서는 무덤에 돌담을 두릅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 모두 애기무덤입니다.

아래쪽 노란 오리 인형은, 몇년 전 놓인 것인데, 태풍이 와도 저 자리에서 꼼짝을 않는다 하네요.

 

 

마을 앞에 선 비석은 당시 탄환이 박힌 것을 시멘트로 메웠습니다.

 

 

4.3을 상징하는 동백꽃 뱃지.

‘통꽃으로 떨어지는 동백꽃’이란 싯구가 기억납니다.

해안에서 본 옛날 등대 같기도 합니다.

나즈막한 돌탑이지만, 거기 서서 등불을 들고 있으면 근해에서 일 끝낸 배가 그 빛에 이끌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합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영령들이 있다면, 부디 동백꽃 등불 삼아 돌아오시길 기원합니다…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먹먹함은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4.3은 현재 진행형!

전날 둘러본 난개발 현장과 생각이 이어지며,

국가권력에 의해 참혹하게 파괴되고 학살된 제주도가

지금은 자본권력과 개발이란 이름으로 파괴당하고 있다

….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튿날 돌아본 강정 해군기지도 그렇습니다.

단선단정 반대!

단독 선거로 단독 정부를 세워 나라가 분단되면 전쟁이 날 것이라 걱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주도민들은 단선 반대를 외쳤습니다.

그 결과 참혹한 학살이 이어졌고, 더 나아가 그리도 우려하던 전쟁이 벌어져 수많은 피해를 냈습니다.

학살을 겪은 제주도민들은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합니다.

아직도 4.3의 트라우마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지요.

그런 곳에 다시 해군기지라니!

다시 전쟁의 그늘을 드리우다니!

해군기지는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올 것이라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해군과 정부는 공사를 강행했고, 이제는 제2공항이라는 이름으로 공군기지를 건설하려 합니다.

대륙 국가에서는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는데도, 마치 대리전쟁을 치른 일을 까맣게 잊은 듯이…

 

 

역사는 잊으면 반복됩니다.

한 시인은 시집 형태로 4.3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제주를 찾은 것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기억하고, 기록하고, 말하고, 후세에 전하고….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 아닐까요?

 

4.3 70주년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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